[스크랩] 세상에 불을 지르다
세상에 불을 지르다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루가복음 12, 49.
행복한 게 어떤 건지 알고 싶으면 꽃과 새와 아이들을 보십시오. 그들이야말로 하느님 나라의 완벽한 주인공들입니다. 과거도 미 래도 없이, 순간에서 순간으로, 영원한 오늘을 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사람을 그토록 힘들게 하는 죄의식과 염려를 모른 채 삶의 완벽한 기쁨으로 충만하여, 사물이나 사람 안에서보다 인생 자체 안에서 즐거움을 만끽하지요. 당신의 행복이 바깥에 있 는 어떤 사물이나 사람들로 말미암거나 그것들에 의하여 유지된다면, 그렇다면 아직 당신은 죽음의 땅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아무 이유 없이 괜히 행복한 날, 모든 것을 즐기면서 아무것도 즐기지 않는(taking delight in everything and in nothing, 일체[一 切]와 무[無]에서 즐거워하는) 당신을 발견하는 날, 비로소 당신은 하느님 나라라고 불리는 끝없는 기쁨의 땅에 들어섰음을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나라를 찾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지요. 쉬운 까닭은 그것이 당신 주변과 당신 안에 있어서 언제 든지 손을 벋어 잡을 수 있기 때문이고, 어려운 까닭은 그 나라를 잡으려면 다른 어떤 것도 잡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 이냐 하면, 어떤 사물이나 사람도 기대지 말고 당신을 흥분시키거나 열광시키거나 안심시킬 힘을 그들한테서 영원히 몰수해야 한 다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당신이 속해있는 종교나 문화가 가르친 것과 달리, 그 무엇도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간단하고 파괴적인 진실을 분명하고 과감하게 직시해야 합니다. 이 진실을 깨치는 순간 당신은 이 일에서 저 일로, 이 친구에서 저 친구로, 이 수련장에서 저 수련장으로, 이 구루(스승)에서 저 구루로 옮겨 다니는 일을 그만두게 될 것입니다. 이들 가운데 그 어느 것도 당신에게 진정한 행복을 안겨줄 수 없습니다. 그것들이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일시적인 흥분과 강렬하게 불타오르 다가 이내 꺼져버리는 쾌감이 전부예요. 그러다가 그것을 잃으면 괴로워지고 그것을 계속 유지하면 지루해지는 거지요.
지난날 당신을 그토록 열광시키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사물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모두들 어찌 되었나요? 예외 없이 모 두가 당신에게 고통 또는 지루함을 안겨주고 사라졌을 거예요. 안 그렇습니까? 이 진실을 아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실을 제대로 알기까지는 진정한 기쁨의 나라를 찾고자 하는 마음조차 일지 않을 테니까요. 많은 사람이 거듭되는 좌절과 슬픔으 로 고통을 겪기 전에는 이 진실을 알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저 밥그릇을 들고서 애정과 칭찬과 안심과 능력과 명예와 성공 을 구걸하며 다른 피조물들의 문을 두드리고 돌아다닐 뿐이지요. 이는 행복이 그것들 안에 있지 않다는 진실을 스스로 알려고 하 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 중심을 들여다보면, 당신으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해줄 무엇이 거기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불만(discontent)과 각성(disenchantment)의 불꽃이 그것이에요. 그것이 일단 부채질을 받으면 맹렬한 산불처럼 일어나 당신의 환각세계(illusory world)를 모두 태워버리고 그리하여 당신의 어리둥절한 눈앞에서, 당신이 그 안에 살면서도 실감하지 못했던 하느님 나라의 베일 을 벗겨줄 것입니다. 당신은 삶에 넌더리를 내본 적이 있나요? 끝없는 불안과 근심걱정에 시달리는 마음 때문에 병을 앓아봤습니 까? 여기저기 구걸하러 다니느라고 지치거나, 당신의 집착과 중독에 속절없이 끌려 다니다가 탈진한 적이 있나요? 직장을 찾아 헤 매고, 승진을 위해 밤낮으로 뛰고, 그러면서 지루하고 시시한 일상에 잠겨드는 지독한 ‘의미 없음’에 몸서리를 친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 안에 이미 불만과 각성의 불꽃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제 그 불꽃이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에 밟혀 꺼지기 전에 부채질을 하여 일으킬 때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벌떡 일어나 당신 삶을 성찰하고 모든 걸림돌을 무릅쓰고서 당신 안에 일어난 그 불꽃들을 더욱 키워야 하는 ‘거룩한 절기’(the Holy Season)인 것입니다.
바야흐로 당신 바깥에 있는 그 무엇도 당신에게 진정한 기쁨을 안겨줄 수 없다는 진실을 볼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당신 은 한 가지 두려움이 당신 가슴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낄 거예요. 그렇게 불만과 각성의 불꽃을 일으키면 그것이 격정으로 바뀌어 당신을 삼켜버리고 마침내 당신이 속한 문화와 종교가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거스르게 하지 않을까, 당신이 세뇌된 대로 보 고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들을 온통 뒤집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지요. 실제로 이 맹렬한 불길은 당신으로 하여금 타고 있 는 배를 요동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재로 만들어버리게 할 것입니다. 갑자기 당신은 당신을 에워싼 사람들로부터 한없이 떨어 져서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당신을 보게 될 거예요.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 그들이 움켜잡으려고 애쓰는 권력, 명예, 안락한 주거환경, 재물,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칭찬을 듣는 것 따위가 모두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로 보이니까요. 그것들을 보기만 해도 역겹고 욕지기가 나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무서워서 피해 달아나는 것들이 당신한테는 더 이상 겁나는 물건이 아 니지요. 당신은 마침내 숙취에서 깨어나 맨 정신이 되었고 겁 없는 자유인으로 되었습니다. 환각의 세계에서 나와 하느님 나라로 들어간 거예요.
이 신성한 불만(divine discontent)을, 간혹 사람들을 미치거나 자살하게 만드는 절망과 혼동하지 마십시오. 절망은 생명으로 이 끄는 신비한 드라이브(mystical drive)가 아니라 자기 파멸로 이끄는 신경병적 드라이브(neurotic drive)입니다. 신성한 불만을 만 사에 끝없이 투덜거리는 사람의 칭얼거림과 혼동하지 마세요. 그런 사람은, 감옥을 부수고 자유의 품으로 뛰어들어야 할 처지에 감방 시설의 개선을 위해 이리저리 분주하지만 결국은 덧없는 지루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인(囚人)과 같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의 중심에서 소용돌이치는 이 불만과 각성의 불꽃을 느낄 때 거기서 도망을 치거나 더 많은 일과 사회활동과 우정에 대한 갈증으로 자신을 마취시키거나 하지요. 아니면 사회운동, 문학, 음악 같은 이른바 창조적 가치가 있는 일에 굴을 파고 그리로 불만과 각성의 불길을 흐르게 하여 거기서 자기를 개선(reform)하려고 합니다. 사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개선이 아니라 반 란(revolt)인데 말입니다. 이들은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지만 실제로는 살아있는 생명이 아니라 죽음의 땅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시체들입니다. 당신의 불만이 신성한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면 거기에 슬픔이나 비탄의 자취가 있는지를 보면 돼요. 그런 것이 전혀 없으면 당신의 불만은 신성한 불만입니다. 오히려, 비록 당신 가슴에 가끔 불안이 일어난다 하여도, 당신의 불만과 각성에는 언제나 기쁨 곧 그 나라의 기쁨이 따라옵니다.
여기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가 하나 있어요. 그 나라는 밭에 감추어진 보물과 같습니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얼른 다시 묻어두 고 가진 것을 기꺼이 다 팔아 그 밭을 사지요. 아직 그것을 찾지 못했거든 그것을 찾아 헤매느라고 아까운 시간 허비하지 마십시 오. 발견될 수는 있지만 찾는다고 해서 찾아지는 게 아니니까요. 당신은 그 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지 않 습니까? 당신이 잘 알고 있는 것은 지금 맛보고 있는 마취된 행복뿐이에요. 그러면서 무얼 찾겠다는 겁니까? 어디서? 아닙니다. 그러지 마세요. 그러지 말고, 당신 가슴 속에 있는 불만과 각성의 불꽃을 찾아 그것을 부채질하여 키우고 마침내 큰불이 되어서 당 신이 알고 있는 세계를 잿더미로 만들게 하십시오.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우리들 대부분이 만족하지 않는 이유는 뭐가 더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알아야겠 고, 더 좋은 직장이 있어야겠고, 더 좋은 차, 더 많은 봉급이 있어야 하겠으니까 그만큼 불만인 거예요. 우리의 불만은 “더 많이”에 대한 욕망에 그 기초를 두었습니다. 아무튼 뭔가 더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불만인 겁니다. “더 많이”에 대한 욕망이 우리로 하여금 명료하게 생각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지요. 우리가 불만을 터뜨릴 때마다 그 까닭은 무엇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기한테 무엇이 부족한지를 몰라서입니다. 직장이나 봉급 액수 또는 지위나 권력 따위에 만족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또는 가질 수 도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 거예요. 만일 우리가 어떤 특별한 조건 때문에 불만을 품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모든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러면 바로 그 원초적 불만이 세상에 대한 명료한 시각을 우리에게 가져다줄 것입니다. 세상에 대하여 그냥 그대로 따 라가는 대신 질문하고 탐구하고 침투해 들어가면 그곳에 명료한 시각과 기쁨을 주는 통찰(insight)이 있습니다.
당신이 느끼는 불만은 무엇이 충분히 없어서가 아니에요. 당신에게 돈이나 권력 또는 명예, 성공, 덕, 사랑, 거룩함 따위가 충분히 있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만족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이 불만은 하느님 나라의 기쁨으로 당신을 인도하는 그 불만이 아니에요. 그 것의 뿌리는 탐욕과 야망이고 그 열매는 끝없는 불편과 좌절이지요. 무엇이 더 많이 없어서가 당신에게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몰라서 불만을 느끼게 되는 날, 그토록 오랜 세월 추구해온 모든 것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들을 추구한 당신 자신에 대하여 아픔을 느끼고 끙끙 앓게 되는 날, 그날 당신은 모든 것을 즐기면서 아무것도 즐기지 않는 놀라운 깨달음의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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