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눈을 뽑아버려라
눈을 뽑아버려라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불구의 몸이 되더라도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또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 보다는 애꾸눈이 되더라도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마르코복음 9, 43-45
눈먼 사람들과 함께 무엇을 할 때 우리는 우리가 전혀 모르는 세계를 그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손으로 만지고 코 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귀로 듣는 그들의 감각이 너무나 섬세하고 정확해서 오히려 우리가 둔한 살덩어리처럼 느껴지지요. 우 리는 시력 잃은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깁니다만 그러나 그들의 다른 감각들이 제공하는 풍부한 정보에 대하여는 거의 아는 게 없습 니다. 그 풍부한 정보들을 시력 상실이라는 값을 치르고 얻게 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가 눈을 잃지 않고서도 그들만 큼 예민한 감각으로 세계를 알 수 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애착’이라고 불리는 당신의 심리적 지 체(肢體)를 잘라버리거나 뽑아버리지 않고서 사랑의 세계에 깨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일을 거절한다면, 당신은 우리 인생에 의미를 주는 유일한 물건인 사랑을 끝내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이야말로 한결같 은 기쁨과 평화와 자유로 가는 패스포드니까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유일한 장애가 있는데 그 이름은 애착 (attachment)입니다. 그것은 움켜잡고 싶은 마음을 내게 하고, 손을 내밀어 움켜잡게 하고, 그것을 움켜잡아 내 것으로 만들고, 그 것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게 만드는, 탐욕스런 눈으로 말미암아 생겨나지요. 사랑이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 뽑아버려야 할 눈이 바 로 이 눈이고, 잘라버려야 할 손이 바로 이 손입니다. 그렇게 손이 잘려져 나간 손목으로 당신은 아무 것도 잡을 수 없고, 뽑혀진 눈의 텅 빈 눈자위로 전에 그런 것이 있으리라고 생각조차 못했던 실재들을 갑자기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드디어 당신은 사랑을 할 수 있게 됐군요. 여태까지 당신이 해온 것은 친절을 베풀고 은혜를 끼치고 누군가를 관심하고 동정 하는 일이었지요. 그것을 당신은 사랑인 줄 알았던 겁니다. 물론, 사랑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것은 저 태양 앞에 놓인 깜 박거리는 촛불처럼, 참 사랑의 지극히 작은 모습들일 뿐입니다.
무엇이 사랑입니까? 사랑은 당신 안팎의 모든 현실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그 현실에 옹근 몸과 마음으로 응하는 것입니다. 눈앞 에 벌어지는 현실을 껴안을 때도 있고 공격할 때도 있고 무시할 때도 있고 정신을 집중하여 바라볼 때도 있겠지만, 그러나 당신은 언제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깨어있는 의식에 의하여 그런 반응을 보이게 될 거예요.
그러면 무엇이 애착입니까? 당신의 감수성(sensitivity)을 무디게 하는,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생각과 그 부분을 채워줄 것으로 여 겨지는 것들에 대한 집착, 당신의 인식을 흐리게 하는 마약이 그것이지요. 당신이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집착하는 한 당신에게서 사랑이 태어날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사랑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감수성이고, 감수성이 란 아주 조금만 손상되어도 전체가 깨어지고 마는 물건이거든요. 레이더의 부품 하나가 망가지면 송수신에 장애가 있듯이 그렇게 작은 집착 하나가 당신의 인식과 반응을 망가뜨리는 겁니다.
결함이 있는 사랑, 모자란 사랑 또는 부분적인 사랑 따위는 본디 없는 사랑이에요. 사랑은, 감수성처럼, 전체가 옹글게 있든지 아 니면 아예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착을 완전히 여읜 사람만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영적 자유의 무한지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그 사람은 자유롭게 보고 자유롭게 반응하지요. 하지만 이 자유를, 집착의 단계를 통과하지 않은 사람들의 무관심과 혼동해서는 아니 됩니다. 어떻게 자기에게 있지도 않은 손을 자르거나 눈을 뽑을 수 있겠어요? 많은 사람이 사랑인 줄로 잘못 알고 있는 (자기가 아무에게도 집착하지 않으니까 모두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 ‘무관심’은 감수성이 아니라 착각이 나 습관화된 포기로 말미암아 무뎌지고 굳어진 가슴입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랑의 땅에 도달하기 위하여 사람은 폭풍이라는 집착의 바다를 무릅써야 합니다. 전혀 항해를 하지 않 고서 자기가 건너편 기슭에 이르렀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사람은 그것들을 칼로 자르거나 뽑아버리기 전에, 그리하여 사 랑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기 전에, 손발을 멀쩡하게 쓸 수 있고 두 눈으로 선명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 생각하지 마 십시오. 그 일은 오직 폭력(violence)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폭력만이 그 나라를 획득합니다.
왜 폭력이냐고요? 우리 몸이,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면, 결코 사랑을 생산하지 못할 뿐 아니라 무엇에 매력을 느끼고, 매 력은 쾌락을 부르고, 쾌락은 집착을, 집착은 만족을, 만족은 싫증과 지루함을 부를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원점이 지요. 매력, 쾌락, 집착, 만족, 싫증의 고단한 동그라미가 그렇게 해서 끝없이 돌아가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들 속에 근심걱정, 질 투, 소유욕, 슬픔, 고통 따위가 범벅이 되어 고단한 동그라미를 고단한 인생청룡열차로 만드는 겁니다.
이렇게 고단한 동그라미를 돌고 또 돌다보면 마침내 충분히 돌았으므로 돌고 싶지 않은 때가 오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당신 눈을 끌어당기는 사물이나 사람이 없게 되면, 드디어 깨어지기 쉬운 평화를 맛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의하십시오. 그것을 자유와 혼동하여, 참으로 자유를 누리고 사랑을 한다는 게 무엇인지 모른 채 죽을 수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건 아니에요. 정말로 고단한 동그라미에서 벗어나 참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당신의 애착에 질렸을 때가 아니라, 당신의 애착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동안에 요절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포기의 칼이 아니라 깨달음의 칼로 요절내야 해요. 포기의 칼로 자르면 애착을 더욱 강화시킬 따름이니까요.
당신이 깨쳐야 할 게 무엇일까요? 세 가지 진실입니다. 첫째, 당신으로 하여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오르내리게 하고, 때로는 짜릿 한 쾌감도 맛보게 하고, 걱정과 절망의 소용돌이를 맴돌게 하다가 결국은 모든 것에 대한 싫증으로 이끌어가는 마약이 당신에게 가져다주는 괴로움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바로 그 마약이 당신으로 하여금 사는 동안에 만나는 모든 사물과 모든 순간을 자유롭 게 사랑하고 즐기지 못하도록 당신을 속이고 있음을 알아야 해요. 셋째, 당신의 중독과 고정관념 때문에 당신이 집착하고 있는 대 상을, 그것은 본디 아름다운 것도 값진 것도 아닌데, 아름답고 값진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을 그토록 반 하게 만든 것은, 당신 애인이나 당신이 좋아하는 물건에 있지 않고, 당신 머리 속에 있는 거예요. 이를 제대로 보고 깨달음의 칼로 그 주술(呪術)을 무찌르십시오.
흔히들, 자기가 사랑받고 있음을 깊이 느낄 때 남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랑에 빠져버린 사람은 사 랑에 취해서가 아니라 유포리아(euporia, 마약에 의한 도취)에 취해서 바깥세상으로 나갑니다. 그에게 세상은 유포리아의 효력이 바닥나면 같이 사라질 장밋빛 그림자지요. 그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실재에 대한 밝은 인식에서가 아니라 자기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간에, 근거 없는 확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확신이야말로 깨어지 기 쉬운 항아리처럼 위태로운 물건이지요. 본디부터 갈팡질팡 변덕스러운 믿지 못할 인간들 위에 기초를 둔 확신이니까요. 그들은 언제든지 스위치를 돌려 당신의 유포리아를 꺼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 길을 걷는 사람이 어디를 가든지 불안한 조바 심을 맛보게 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올시다. (당신을 향한 누군가의 사랑 때문에 바깥세상으로 나갈 경우, 당신은 실재 에 대한 자각[自覺]이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서 받는 사랑으로 흥분되어 있는 것이다. 당신 아닌 다른 누가 스위치를 잡고 있는데 그가 스위치를 꺼버리면 당신의 흥분도 따라서 사라진다는 얘기다.)
깨달음의 칼을 써서 애착을 끊고 사랑으로 들어갈 때, 마음에 간직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을 너무 다그치거나 급하게 밀 어붙이거나 미워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런 태도에서 어떻게 사랑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끝없는 자비심과 수술하는 외과 의사의 냉정한 판단력으로 자신과 세상을 대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당신은 마음에 끌리는 상대를 자유롭게 사랑하며 그 사랑을 전보다 더욱 즐길 수 있게 될 것이고, 동시에, 다른 모든 사물과 사람들도 똑같이 사랑하는 놀라운 경지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이 정말 제대로 된 사랑을 하고 있는 건지를 알아보는 리트머스 시험지입니다. 이제 당신은 대상에 애착하던 때와 다 름없이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을 즐기게 되었어요. 다만, 더 이상 짜릿한 쾌감(thrill)에 끌리지 않게 되고 따라서 더 이상 고통과 초 조함을 맛보지 않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당신은 모든 것을 즐기면서 아무것도 즐기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한테서 맛보는 즐거움이 그 사물이나 사람한테 있는 게 아니라 당신 안에 있다는 진실을 드디어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오케스 트라는 당신 안에 있고 당신은 그것을 어디든지 품고 다닙니다. 당신이 만나는 사물과 사람들은 그 오케스트라가 어떤 멜로디를 연주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작용할 따름이지요. 눈길을 끄는 사람이나 사물이 없을 때에는 오케스트라가 자신의 곡을 연주할 것 입니다. 바깥에서 자극을 받아야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이제 당신은 아무도 당신 안에 넣어줄 수 없고 따라서 아무도 가져갈 수 없는 행복을 가슴에 안고서 살게 되었습니다.
테스트할 것이 한 가지 더 남아 있어요. 당신은 지금 뚜렷한 이유 없이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이 사랑이 지속될까요? 그건 아무도 보장 못하지요. 사랑이란, 조각으로 쪼개지지 않는 것이긴 하지만, 일정한 기간 동안에만 지속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당신의 마 음이 깨어 있느냐 아니면 잠들어 있느냐에 따라서 사랑은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단 한번 참 사랑의 맛을 본 사람 이라면, 자신의 인생을 과연 살 만한 것으로 만들어 줄 그 유일한 물건을 얻기 위하여 어떤 값도 비싸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희생도, 눈을 뽑거나 손을 자르는 일까지도, 마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이것 하나 만큼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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