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하는 방/내 생각을 섞다

[스크랩] 폭력을 쓰는 사람

웃는날 2012. 2. 27. 18:28

 

 

 

폭력을 쓰는 사람

 

 

 

그리고 폭력을 쓰는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마태오복음 11, 12

 

 

막 피어난 장미의 싱싱하고 아름다운 모습과, 긴장 속에서 쉴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당신의 삶을 견주어보십시오. 장미에게는

당신한테 없는 선물이 있습니다. 그녀는 자기 자신으로 완벽하게 만족합니다. 당신처럼 태어나면서 입력된 프로그램도 없고 자신

한테 아무 불만이 없는지라, 저 아닌 다른 무엇이 되려는 마음이 전혀 없어요. 사람들 가운데 어린 젖먹이들과 성인들한테서나 겨

우 발견되는 천진무구(天眞無垢)와 내적 갈등의 부재(不在)를 장미가 지니고 있는 까닭이 여기 있지요.

 

당신의 딱한 처지를 보십시오. 당신은 늘 당신이 못마땅하고 그래서 어떻게든지 당신을 바꾸고 싶어 합니다. 그 결과, 당신을 바꾸

려는 모든 노력에 수반되는 폭력이 자신에 대한 조바심과 함께 당신을 가득 채우고 있지요. 따라서 당신이 어떻게 바뀌어도 내적

갈등은 따라다니게 마련입니다. 게다가, 당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거나 당신이 되지 못한 것이 된 다른 사람들을 보면 배가 아

프고 마음이 괴롭습니다.

 

당신이 저 장미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만족하고 당신 아닌 무엇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다면, 그래도 남에 대한 시기

와 질투로 괴로울까요? 그러나 당신은 당신보다 더 많이 알고 더 잘 생기고 더 유명하고 더 성공한 어떤 사람처럼 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안 그런가요? 당신은 좀더 우아하고 좀더 사랑스럽고 좀더 신중하고 좀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요. 하느님을

찾고 싶고 당신의 이상(理想)에 좀더 가까이 가고 싶어 합니다. 번번이 좌절과 낙심으로 끝나거나 비싼 고통의 대가를 치르고야 겨

우 성취했던 당신의 자기-계발을 위한 노력의 슬픈 역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 그럼 당신을 바꿔보려는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자기-계발의 꿈도 접고, 그러면 당신은 당신 안팎의 모든 것을 수동적으로 받

아들이면서 멍청한 상태로 잠을 자게 되는 걸까요? 아닙니다. 자신을 못살게 들볶지도 않으면서 멍청한 피동태로 살지도 않는 ‘제

3의 길’이 있어요. 자기-이해의 길(the way of self-understanding)이 그것입니다. 그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당신이 누군지를 이해하려면, 당신을 당신 아닌 무엇으로 바꾸려는 욕망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워야 하니까요. 개미를 변화시키려

는 마음 없이 개미의 습성을 연구하는 생물학자와 개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개의 습성을 연구하는 조련사의 태도를 견주어보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만일 당신이 당신을 바꾸려 하지 않고 그냥 있는 대로 당신을 관찰한다면, 자신을 판단하

거나 비난하거나 고쳐보려는 마음 없이 사람과 사물에 대한 당신의 모든 반응을 연구한다면, 그런다면 당신의 눈길은 무엇을 취사

선택하거나 변명하거나 굳어진 결론을 내리는 대신 언제나 순간순간 신선하게 열려있을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당신은

당신 안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들을 보게 될 거예요. 당신은 어느새 밝은 깨달음의 빛으로 충만하여 투명하게 변모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변화가 과연 일어나느냐고요? 예, 물론입니다! 당신 안에서도 일어나고 당신 주변에서도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것은 교활하

면서 분주하기만한 당신의 에고가 일으키는 변화가 아니에요. 당신의 에고는 끊임없이 겨루고, 비교하고, 강요하고, 설교하고, 조

급한 욕심으로 무엇을 꾸며 만들고 그리하여 당신과 대자연(Nature) 사이에 끝없는 긴장과 투쟁과 저항을 불러일으키지요. 그것

이야말로 브레이크를 잔뜩 걸어놓고 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기운만 빠지고 아무 이루어지는 게 없는 헛수고일 뿐입니다. 반면에,

깨달음에서 오는 변화의 빛은, 당신 에고의 온갖 계획과 시도를 옆으로 밀쳐두고, 대자연이 한 송이 장미한테서 이루는 천진스럽

고 우아하고 온전하고 속에 아무 갈등도 없는 변화를 당신한테서 그대로 이루도록 당신을 대자연에 내어 맡기지요.

 

모든 변화에 힘이 필요하니까 대자연도 힘을 써야겠지요. 예, 대자연도 힘을 씁니다. 그러나 대자연의 힘은 에고가 쓰는 힘과 달

리, 조급함과 자기-불만 또는 자기-혐오에서 나오는 힘이 아니에요. 홍수로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는 폭우나, 우리가 모르는 생태

계의 법에 따라서 새끼들을 삼키는 물고기, 더 높은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세포들을 파괴하는 세포들 안에는 분노도 증오도 없습

니다. 대자연이 무엇을 파괴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거나 자기-확장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부분의 존속과 안녕 대신

전체 우주의 선(善)을 지키려는 신비스런 법칙에 따르는 것입니다.

 

과거 성인들이 일반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악을 바로 보고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지배하던 관념과 체제들을 향해 폭풍처럼 도전한

것도 바로 이 힘에 의한 것이었지요. 장미를 싫어하는 사람 면전에서 한 송이 장미를 당당하게 피워내는 것도 바로 이 힘입니다.

한 송이 장미로 하여금, 성인들처럼, 꽃잎을 활짝 펼쳐 화려한 빛깔 뽐내며 향기를 떨치다가 때가 되면 그 수명을 한 치도 연장하

려는 기색 없이 그야말로 미련 없이 가차 없이 시들게 하는 것도 바로 이 힘이지요. 그런즉, 이 힘으로 사는 사람은, 깨달음의 꽃을

 피우는 것으로 만족하며, 모든 변화를 대자연 속에 있는 하느님의 힘에 내어 맡기고, 공중의 새들처럼, 들의 꽃들처럼, 그렇게 살

아갑니다. 그들한테서는 오늘의 인간세상을 특징짓는 불만도, 불평도, 쉴 새 없이 무엇을 추구하는 분주함도, 남에 대한 질투도,

남과 겨루어 이기려는 경쟁심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출처 : 의식 혁명
글쓴이 : 기 자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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