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가끔 속이 상하면 홧김에 잘하는 소리가 있다. 바로 “자존심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는 말이다. ‘자존심’이라는 말까지 들먹일 정도가 되면 그만큼 그가 무시당했거나 무시당할 상황에 처했다는 증거다.
이 ‘자존심’과 어감이 비슷한 단어로 ‘자존감’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의 의미는 한 음절 차이를 뛰어넘는다. 누군가의 내면을 이야기하면서 행복한 자아를 표현하는 단어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내가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사람인가를 스스로 인식하며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는 것을 말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위기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비난 앞에서도 그 사람의 관점을 존중하고 자기 이해와 발전의 기회로 만들어간다. 그러나 이와 달리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자기 자신을 우상화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우리는 현대 남성들에게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보다 자존심이 높은 사람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반대로 자존심이 높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 참 많다. 후배가 나보다 앞서서 승진할 때 자존심이 상한다. 많은 동료 앞에서 나의 실수에 대해 직장상사에게서 책망을 들을 때 자존심이 구겨진다. 자존심에는 ‘내가’라는 표현이 꼭 등장한다. 내가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편하지 않은 상황을 설명할 때 우리는 자존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자존심이란 말은 남에게 자신의 뜻을 확고히 세워 굽히지 않는 것, 즉 자신의 주장을 철저히 고집하려 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따라서 자존심을 내세울 때마다 남자들은 자주 어긋난 선택을 하곤 한다. 자존심 때문에 회사에 사표를 던지는 남성들이 간혹 있다. 그래서 자존심은 너무 세도 안 좋고 너무 약해도 안 좋은 것 같다. 그런데 자존심에는 기준도 없다. 오직 기준이 있다면 체면이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나를 딛고 일어서 변화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바로 자존감이다. 올림픽에서 승리한 선수들을 보면서 ‘저들의 승리가 자존심의 승리일까 아니면 자존감의 승리일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빙판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달리는 불굴의 정신, 그리고 한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어도 다음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직장 속에서 우리 역시 미끄러지고 밀리는 상황들이 많이 일어난다. 남자들이 나이가 들면 남는 것은 자존감이 아니라 자존심일 때가 많다. 문제는 나보다 앞서가는 세상, 나보다 능력 있는 후배들이 이 자존심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자존심을 붙들고 중년을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를 절벽으로 밀어내는 것과 같다.
지나온 시간과 경험들에 대한 감사, 그리고 열심히 일하면서 이뤄놓은 여러 유업에 대한 회고는 우리 인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주는 자존감을 선물할 것이다. 자존감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져다 주지만, 자존심은 내일이 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다 준다. 자존감은 더 많은 소유에 대한 집착 대신 나누며 살아가는 일에 집중하게 하지만, 자존심은 더 많은 소유에 집착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인가? 아니면 자존심으로 가득 찬 사람인가? 중년의 시기에 다 같이 자존심을 내려 놓고 자존감의 수위를 높여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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