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지 마라
예수께서는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루가복음 9, 62
하느님 나라는 사랑입니다. 사랑한다는 게 무엇입니까? 생명에 대하여, 사물과 사람에 대하여, 민감하게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누구도 무엇도 배타하지 않고 모든 사물과 사람을 옹글게 느끼는 거예요. 자기 자신을 단단하게 굳히고 문을 닫을 때에만 이루 어질 수 있는 것이 배타입니다. 무엇이 굳어지면 거기에 더 이상 민감한 느낌은 없습니다. 이런 민감한 느낌의 예(例)를 찾아보기 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길을 가다가 유리조각이나 못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누가 다칠까봐 그것을 치워본 적이 있나 요? 당신이 그걸 치워서 다치지 않게 된 사람이 누군지, 그런 건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또 당신의 행위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 찬받지 못해도 괜찮아요. 그냥 누군가에게 친절한 배려를 베풀고 싶어서 그랬을 뿐이니까요. 당신은 지구 저편에서 일어난 대형 참사나, 한번도 가본 적 없고 앞으로도 갈 기회가 없을 어떤 숲이 마구 훼손되는 것에 가슴이 아파본 적 있습니까? 순전히 당신 안 에 있는 착한 마음이 시켜서 모르는 어떤 사람에게 길을 찾아주기 위하여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려본 적이 있나요? 바로 그런 순간 에, 당신 안에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사랑이 당신 밖으로 나와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 사랑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그것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당신 안에 있으니까요.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민감한 느낌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치우고 그것을 겉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민감한 느낌을 가로막는 장애물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신념(Belief)과 집착(Attachment)이 그것입니다. 하나의 신념을 품는 순간 당신은 사람과 상황과 사물에 대하여 하나의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굳어지게 되고 민감한 느낌은 사라지고 말 지요. 이미 당신은 편견에 치우쳐 있고 바로 그 편견으로 사람과 사물과 상황을 보고 있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대상을 있는 그 대로 보지 않는 거예요. 보이지도 않는 것에 대하여 무슨 수로 민감한 느낌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아는 사람 얼굴을 하나나 둘쯤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그를 생각할 때 함께 떠오르는 그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있는 대로 열거해보십시오. 이 사람은 이 렇고 저 사람은 저렇다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벌써 그 생각을 굳히고 그 생각으로 사람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이 순간에 그가 지닌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없지요. 그것은 마치 어제 일기예보로 오늘 비행하는 조종사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당신 의 모든 신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그것들이 당신의 신념일 따름이라는 사실을 깨치기만 해도, 당신의 모든 결론들과 편견 들이 걷히며 그 자리에 실상(實像)이 드러날 것입니다.
두 번째 장애물인 집착에 대하여 생각해봅시다. 집착은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요? 세 단계가 있어요. 첫째 당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물건들, 자동차, 가구, 최신유행 가전제품, 칭찬 한 마디, 모두들 부러워하는 직장 같은 것들이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러면 당신은 그것들을 잡고 싶지요. 그래서 그것들이 주는 즐거움을 맛보려고 하는데, 이것이 둘째 단계입니다. 마지막 셋째 단계는 그것들이 주는 쾌락을 당신의 행복과 일치시킴으로써 그것들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는 확신을 품는 거예요. 이로써 당신은 완벽한 집착에 사로잡혀, 당신이 움켜잡으려고 하는 대상 아닌 다른 사람이나 사물은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게 되지요. 그렇게 집착하던 것을 두고 떠날 때에는 마음까지 거기에 두고 떠나서 새로 만나는 다른 장소에 풀어놓을 마음이 없는 겁니다. 인생 심포니는 끊임없이 연주되는데 당신은 계속 뒤로 돌아가 지나간 멜로디에 매달리고 나머지 음악에는 귀를 막고 있는 거예요. 그리하여 당신이 움켜잡 고자 하는 것과 인생이 당신에게 주고자 하는 것 사이에 불협화음과 갈등이 생겨나지요. 그러면 결국 사랑과 사랑이 가져다주는 진정한 자유의 죽음인 긴장과 불안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입니다. 사랑과 자유는 끊임없이 생겨나는 가락을 즐기면서 놓아버 리고 그렇게 하여 다음에 이어지는 가락을 옹글게 즐길 때에만 맛볼 수 있는 것이거든요.
어떻게 하면 집착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무엇을 버림으로써 집착을 없애려고 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버려서 눈에 띄지 않게 하는 방법은 그것에 집착할 때와 동일한 갈등과 무감각과 욕심을 일으키지요. 그렇게 해서 다시 한번 자기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 뿐입니다. 비결은 아무것도 버리지 말고, 아무것도 붙잡지 말고, 모든 것을 즐기며 흘러가게 놓아두는 데 있어요. 어떻게 그 럴 수 있느냐고요? 무엇을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이며 사람을 추하게 만드는지를 오랜 시간 면밀히 관찰하는 겁니 다. 집착이 가져다주는 쾌락의 덧없음을 눈여겨보십시오. 그러나 집착할 때의 불안, 고통, 자유롭지 못함을 묵상하면서 집착을 버 릴 때 맛보게 되는 기쁨, 평화, 자유도 아울러 묵상하세요. 그러면 더 이상 뒤 돌아보지 않고 현재 순간의 음악을 마음껏 즐기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온갖 집착으로 속속들이 부패하고 감염된 이 사회를 들여다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권력, 재물, 명 예, 성공 따위에 집착하여 그것들을 추구하고 쟁취하는 데 목숨을 걸면,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사회에 공헌이 많은 생산적인 존재 라고 말합니다. 만일 그들이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본인과 남들에게 엄하고 차갑고 몰인정하다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몸을 돌보지 않고 자신의 야망을 밀어붙이면 세상은 그를 믿음직한 시민으로 우러르고, 그의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들은 그가 차지한 자리를 자 랑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사람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사랑의 부드러운 감수성을 지녔으면서 사회의 존경 을 아울러 받는 사람이 당신 곁에 얼마나 있나요? 이런 사실을 계속해서 깊이 묵상하다보면 마침내 정나미가 떨어져 뱀이 당신 몸 위에 기어오를 때처럼 질겁하고 모든 집착을 떨쳐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성취와 집착, 불안과 탐욕, 몰인정과 무감 각 위에 기초를 둔 이 역겨운 세상에 저항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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